20. WAR (투수 WAR) — 마운드 위에서 ‘대체 불가’의 의미

투수 WAR이란 무엇인가: 승리 기여도의 궁극적인 척도

WAR (Wins Above Replacement)은 세이버메트릭스의 핵심이라 불리는 지표로,

'선수가 팀의 승리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단 하나의 수치로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투수 WAR은 마운드 위에서 투구가 만들어낸 모든 가치를 측정합니다.

WAR의 핵심은 대체 선수(Replacement Player)라는 기준점에 있습니다.

대체 선수란 부상당하거나 팀을 떠난 주전 선수를 대신하여 쉽게 영입할 수 있는

리그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유능한 선수을 의미합니다.

WAR은 이 대체 선수 대비 해당 투수가 팀에 몇 승을 더 안겨주었는가를 측정합니다.

“만약 이 투수 대신 대체 선수(Replacement Player)가 같은 이닝을 던졌다면, 팀은 몇 승을 덜 했을까?”

 

이 정량적인 답변이 바로 투수 WAR 수치이며,

이는 투수의 가치를 가장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측정하는 기준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2017 시즌 KBO 데이터

 

목차

• 투수 WAR의 복잡한 계산 방식: FIP vs RA9
• WAR을 구성하는 세 가지 축: 지속성, 실력, 환경 보정
• 예시로 보는 WAR의 실제 의미 
• WAR과 팀 전략: 연봉 산정 및 미래 가치
• 데이터로 본 WAR의 한계
• 마무리 — WAR은 숫자가 아닌 스토리입니다

 

⚙️ 투수 WAR의 복잡한 계산 방식: FIP vs RA9

타자와 달리 투수 WAR은 계산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주요 기준으로 나뉩니다.

이는 WAR의 뿌리가 되는 투수 평가 지표를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1. FIP 기반 WAR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 핵심 원리: 투수가 수비수의 도움 없이 통제할 수 있는 요소(K, BB, HR)만을 사용하여 투구 성적을 측정합니다. (주로 FanGraphs에서 사용)
• 장점: 팀 수비력과 운의 영향을 완벽하게 제거하여 투수 본연의 '실력'과 '미래 예측력'을 가장 순수하게 보여줍니다.
• 단점: 실제 경기 결과(팀의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비 도움이나 구장 환경을 무시하므로, 투수의 '현재 승리 기여도'를 과소평가할 수 있습니다.

2. RA9 기반 WAR (Runs Allowed per 9 Innings)

• 핵심 원리: 투수가 9이닝당 허용한 실점(Runs Allowed, 자책점+비자책점 포함)을 기반으로 성적을 측정합니다. (주로 Baseball Reference에서 사용)
• 장점: 실점 전체를 반영하므로, 투수의 위기관리 능력이나 수비를 활용하는 능력 등 '투수의 실제 경기 결과 기여도'를 포괄적으로 담아냅니다.
• 단점: 투수의 실력이 아닌, 팀 수비의 질, 구장 특성, 운 등 투수가 통제할 수 없는 외적 요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순수 실력' 측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KBO에서 사용되는 WAR 역시 두 가지 접근법을 혼합하거나 특정 ERA 조정치(예: ERC, DIPS)를 사용하여 계산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닝 소화량과 리그 평균 대비 성과를 승리 기여도로 변환한다는 기본 개념은 동일합니다. 어떤 계산 방식을 사용하든, WAR은 단순한 방어율보다 더 깊이 있게, 투수가 혼자 만들어낸 진짜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 WAR을 구성하는 세 가지 축: 지속성, 실력, 환경 보정

투수 WAR이 단순한 ERA나 승리 횟수를 넘어 가장 종합적인 지표로 불리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모두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1. 이닝 소화 능력 (Volume): 아무리 효율적인 투구(낮은 ERA나 FIP)를 하더라도 이닝을 적게 던지면 WAR은 낮게 나옵니다. 선발 투수의 '이닝 이터(Innings Eater)'로서의 가치는 팀 불펜의 피로를 덜고, 다음 경기까지 팀의 운영 효율을 높이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합니다. WAR은 이닝 소화에 비례하여 가치를 부여합니다.
2. FIP 기반의 순수 실력 (Quality): 탈삼진율을 높이고, 볼넷과 홈런을 줄이는 투수만이 높은 WAR을 기록합니다. 이는 수비에 의존하지 않는 투수 본연의 압도적인 구위와 제구력을 의미합니다. WAR은 투수의 실력을 리그 평균 대비 얼마나 우월한지를 측정하여 가치로 환산합니다.
3. 환경 및 리그 보정 (Context):
   • 구장 효과: 타자 친화적인 구장(Hitter-friendly Park)을 홈으로 쓰는 투수가 낮은 ERA를 기록하면, 더 투수 친화적인 구장의 투수보다 높은 WAR을 얻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입니다.
   • 리그 수준: MLB와 KBO 리그 간의 WAR을 단순 비교할 수 없습니다. WAR은 해당 리그의 수준과 평균치를 기준으로 가치를 산정합니다.

💡 예시로 보는 WAR의 실제 의미 

WAR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하기 위해, 실제 KBO 시즌 기록을 기반으로 한 투수 WAR 상위 순위를 인용하겠습니다.

※ WAR은 계산 주체에 따라 수치가 상이하며, 다음은 한 세이버메트릭스 지표 제공사의 공식 자료를 기반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순위	선수	팀	시즌	WAR (선발투수)
1	에릭 페디	NC	2023	8.71
2	양현종	KIA	2019	7.57
3	류현진	한화	2010	7.13
4	김광현	SK	2010	6.75
5	케이시 켈리	LG	2019	6.61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2023시즌 페디는 한 시즌 동안, NC의 대체선수(평균 수준의 투수)보다 약 8.71승을 더 만들어낸 셈입니다. 즉, 그가 없었다면 NC는 8.71경기 정도를 덜 이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페디가 KBO 역대급 투구 내용을 보여주며 압도적인 WAR을 기록했고, 이는 그가 MVP를 수상한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ERA와 승수뿐 아니라, 이닝 소화와 FIP 기반의 순수 실력이 모두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 WAR과 팀 전략: 연봉 산정 및 미래 가치

프런트 입장에서 WAR은 연봉 산정과 트레이드 가치 평가의 핵심입니다.

KBO에서도 최근 몇 년간 “선발 투수의 WAR 1.0 = 약 10억 원 수준”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수치는 MLB에서 통용되는 “WAR 1.0 = 약 800만~900만 달러 가치” 개념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WAR이 높은 투수는 단순히 성적뿐 아니라 팀 운영 전략의 중심 자원이 됩니다.

• 가치 평가 기준: WAR 2.0 이상은 주전급, WAR 4.0 이상은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급, WAR 6.0 이상은 MVP급 투수로 분류됩니다.

🧠 데이터로 본 WAR의 한계

물론 WAR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해석을 위해 한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1. 불펜 투수의 과소평가: WAR은 '이닝 소화'를 매우 중요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짧은 이닝을 압도적으로 막는 불펜 투수의 WAR은 선발 투수에 비해 낮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무리 투수가 60이닝을 던져 ERA 1.0을 기록해도, 200이닝을 던져 ERA 3.0을 기록한 선발 투수보다 WAR이 낮게 나옵니다.
2. 계산 방식의 차이: FIP 기반과 RA9 기반 WAR의 수치가 다릅니다. 이는 연봉 협상 등 중요한 순간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낳습니다.
3. 클러치 상황: WAR은 투수의 상황별 중요도(주자 만루, 9회 말 동점 상황 등)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합니다. 이는 '클러치 성적'을 추가적으로 분석하는 다른 지표(예: WPA)의 역할로 남겨둡니다.

따라서 WAR은 '절대적 수치'보다는 '선수 간 비교를 위한 상대적 지표'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 마무리 — WAR은 숫자가 아닌 스토리입니다

투수 WAR은 단순히 “몇 승을 더했다”는 계산식이 아닙니다.

그 수치 안에는 꾸준함, 위기관리 능력, 경기 운영 감각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WAR이 높은 투수는 단순히 잘 던지는 투수가 아니라, 팀의 승률 궤적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대체 불가(Replacement)'의 가치를 증명한 스토리텔러입니다. WAR은 투수의 결과와 과정, 그리고 존재감을 가장 정직하게 말해주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