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는 투수와 관련한 세이버매트릭스 지표를 살펴 보겠습니다.
야구에서 투수의 성적을 평가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수치는 ERA(평균자책점) 입니다.
ERA는 한 투수가 9이닝을 던졌을 때 평균 몇 점을 실점했는지를 나타내며,
오랜 기간 동안 투수의 대표적인 능력지표로 쓰여왔습니다.
하지만 세이버매트릭스의 발전 이후,
ERA만으로는 투수의 진짜 실력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왜냐하면 ERA에는 팀 수비력, 운, 구장 특성 같은 투수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타구라도 수비수가 완벽하게 처리하면 실점이 사라지고,
수비가 실수하면 자책점으로 기록됩니다.
즉, ERA는 투수의 순수한 피칭 실력보다는 경기의 결과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목차
- ERA: 결과 중심의 전통적 지표와 그 한계
- ERA에 개입하는 통제 불가능한 요소들
- FIP: 수비를 걷어낸 순수 투수력의 지표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 FIP 계산에 사용되는 4가지 핵심 요소
- ERA와 FIP의 비교 분석 및 활용법
- FIP를 넘어선 새로운 지표들: xFIP와 SIERA
- 결론: 결과의 언어 ERA vs 실력의 언어 FIP
⚙️ ERA: 결과 중심의 전통적 지표와 그 한계
ERA는 자책점(Earned Runs)을 투구이닝으로 나눈 뒤 9이닝 기준으로 환산하여 계산합니다.
이 계산 방식은 매우 직관적입니다. 숫자가 낮을수록 팀에 적은 점수를 내줬다는 의미이니, 당연히 좋은 투수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점수를 내주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투수 외적인 요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ERA에 개입하는 통제 불가능한 요소들
- 팀 수비력 (Defense): 타자가 친 인플레이 타구(Ball In Play, BIP)의 결과는 전적으로 수비수들의 능력과 위치 선정에 달려 있습니다. 같은 느린 땅볼이라도 유격수가 깔끔하게 잡아 아웃시키면 실점이 사라지지만, 수비수가 실책을 저지르거나 타구 판단을 잘못하여 안타가 되면 곧바로 자책점 혹은 비자책점으로 연결됩니다.
- 운 (Luck/Babby Ball Luck): 타구가 수비수 사이를 절묘하게 뚫고 지나가는 '행운의 안타'나, 잘 맞았지만 수비 정면으로 가는 '불운의 아웃' 등, 타구 결과에는 일시적인 운의 요소가 크게 작용합니다. 세이버매트릭스에서는 이를 **BABIP (Batting Average on Balls In Play)**로 측정하며, 투수에게 BABIP는 투수의 실력보다는 운에 의해 변동성이 크다고 봅니다.
- 구장 특성 (Ballpark Factors): 투수가 홈으로 사용하는 구장의 크기, 펜스 높이, 바람의 방향 등 환경적인 요소도 ERA에 영향을 미칩니다. 극단적인 예로, 홈런이 많이 나오는 구장을 사용하는 투수는 ERA가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ERA는 투수의 **'순수한 피칭 실력'**보다는 **'경기의 최종 결과'**를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에, 투수의 미래 성적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 FIP: 수비를 걷어낸 순수 투수력의 지표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ERA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투수의 고유한 실력만을 측정하기 위해
세이버매트릭스에서 개발된 것이 바로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입니다.
FIP는 이름 그대로 **수비수(Fielding)의 영향을 배제(Independent)**하고 투수를 평가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FIP의 핵심 가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투수는 타구가 인플레이되는 순간부터 결과에 대한 통제력을 거의 상실한다.
따라서 FIP는 타구가 수비수에게 아예 가지 않아 투수가 결과에 100% 영향을 미치는 네 가지 요소만으로 계산됩니다.
FIP 계산에 사용되는 4가지 핵심 요소
- 홈런 (HR, Home Runs): 투수가 던진 공이 바로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수비는 무의미합니다.
- 볼넷 (BB, Base on Balls): 투수의 제구력 문제로 발생하는 결과이며 수비 개입이 없습니다.
- 사구 (HBP, Hit By Pitches): 마찬가지로 투수의 제구력 문제로 발생하며 수비 개입이 없습니다.
- 탈삼진 (K, Strikeouts): 투수의 압도적인 구위와 기술로 타자를 아웃시키는 결과이며 수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FIP는 이 네 가지 결과의 빈도에 리그 평균 자책점(혹은 FIP)과 비슷하게 맞추기 위한 **상수(C, Constant)**를 더해 계산됩니다.
- 설명: FIP 수식의 각 요소 앞에 붙은 계수($13, 3, -2$)는 홈런, 볼넷/사구, 탈삼진이 실점에 미치는 평균적인 기여도를 반영한 것입니다. 홈런이 가장 많은 실점 효과를 내기 때문에 가장 큰 계수($13$)가 붙습니다. 탈삼진은 실점을 억제하는 요소이므로 마이너스 계수($-2$)가 붙습니다.
- 상수(C): 매년 리그 전체의 평균 ERA와 FIP를 일치시키기 위해 더해지는 값입니다. 이 상수는 매년 리그 환경에 따라 미세하게 조정됩니다.
결론적으로, FIP는 **"만약 이 투수가 평범한 수비와 운 속에서 던졌다면 평균적으로 이 정도의 자책점을 기록했을 것이다"**를 예측하는 지표, 즉 투수의 순수한 피칭 실력을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 ERA와 FIP의 비교 분석 및 활용법
| 항목 | ERA (평균자책점) | FIP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
| 초점 | 경기의 결과 | 투구의 과정/실력 |
| 반영 요소 | 실제 실점 (자책점), 인플레이 타구 결과 포함 | 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수비 개입 X) |
| 수비 영향 | 큼 (인플레이 타구 결과에 따라 크게 변동) | 없음 (수비 도움/실책이 반영되지 않음) |
| 운의 영향 | 큼 (BABIP 등 일시적 운에 취약) | 적음 (장기적인 실력 반영에 유리) |
| 활용 분야 | 과거 성적 평가, 실제 경기 승패 기여도 | 미래 성적 예측, 투수 본연의 실력 평가 |
ERA와 FIP를 비교하는 것은 투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세이버매트릭스적 접근법입니다. 두 수치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에 따라 투수의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1. ERA < FIP: '운' 또는 '수비 지원'이 좋았던 투수
- 상황: 실제 자책점(ERA)이 순수 실력 지표(FIP)보다 낮게 기록된 경우입니다.
- 분석: 이 투수는 인플레이 타구(BIP)가 운 좋게 수비수에게 잡히거나, 팀 수비가 매우 뛰어나 실점으로 연결될 타구를 잘 막아낸 덕을 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 미래 예측: FIP가 실력에 더 가깝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는 BABIP가 평균으로 회귀하거나 수비 도움이 줄어들어 **ERA가 FIP 수준으로 상승(퇴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시: 어떤 투수가 ERA 2.80, FIP 3.50을 기록했다면, 그는 운이 매우 좋았거나 특급 수비진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며, 다음 시즌 ERA는 3점대 중반으로 올라갈 위험이 있습니다.
2. ERA > FIP: '불운' 또는 '수비 지원'이 부족했던 투수
- 상황: 실제 자책점(ERA)이 순수 실력 지표(FIP)보다 높게 기록된 경우입니다.
- 분석: 이 투수는 잘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비 실책이 잦았거나 타구가 운 나쁘게 안타로 연결되는 등 불운을 겪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미래 예측: 투수의 본질적인 실력은 FIP에 가깝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는 운이 평균으로 돌아오면서 **ERA가 FIP 수준으로 하락(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투수에게 투자하거나 영입을 고려할 때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예시: 어떤 투수가 ERA 4.20, FIP 3.20을 기록했다면, 그는 탈삼진과 볼넷 관리에서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운이나 수비 부재로 손해를 봤으며, 다음 시즌에는 3점대 초반의 ERA를 기록할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됩니다.
3. ERA ≒ FIP: 실력과 결과가 일치하는 투수
- 상황: ERA와 FIP 수치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 분석: 이 투수는 운이나 수비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순수한 피칭 실력대로의 결과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가장 일관성이 있고 예측하기 쉬운 유형의 투수로 분류됩니다.
🌟 FIP를 넘어선 새로운 지표들: xFIP와 SIERA
FIP가 투수 평가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세이버매트릭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FIP에도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피홈런(HR) 지표입니다.
어떤 투수는 자신의 구장 특성이나 투구 스타일 때문에 피홈런이 리그 평균보다 훨씬 낮거나 높게 나올 수 있습니다. FIP는 이 피홈런을 실제 기록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투수 개인의 비정상적인 피홈런 수치에 따라 FIP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xFIP (Expected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xFIP는 이 피홈런의 변동성을 더욱 줄이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xFIP는 실제 투수가 허용한 홈런 개수(HR) 대신, **'투구이닝 당 리그 평균 플라이볼 대비 홈런 비율'**을 사용하여 기대 홈런 개수를 산출하여 대입합니다.
즉, **"이 투수가 올해 던진 플라이볼의 개수로 볼 때, 리그 평균적인 투수였다면 몇 개의 홈런을 맞았어야 하는가?"**를 계산하여 FIP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xFIP는 FIP보다 장기적인 예측력에서 더 우수한 지표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SIERA (Skill-Interactive ERA)
SIERA는 FIP 계열 지표 중 가장 복잡하고 진보된 형태입니다. FIP가 탈삼진, 볼넷, 홈런을 단순한 가중치로 계산하는 것과 달리, SIERA는 투수의 탈삼진율과 볼넷 허용률이 **BABIP(인플레이 타구 타율)**에 미치는 영향을 포함하여 계산합니다.
- 예시: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는 타자들을 범타 처리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들의 BABIP가 낮게 나올 경향이 있습니다. SIERA는 이러한 **'기술(Skill)' 간의 상호작용(Interactive)**까지 고려하여 ERA를 예측하므로, 투수의 진정한 실력을 가장 정교하게 반영하는 지표 중 하나로 인정받습니다.
💡 결론: 결과의 언어 ERA vs 실력의 언어 FIP
야구는 분명 운이 개입하는 스포츠이며, 최종적인 승패는 ERA라는 결과의 수치에 의해 결정됩니다. ERA가 낮은 투수가 팀 승리에 기여한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ERA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여주는 감정의 기록이자 역사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FIP는 그 결과가 운 때문인지, 수비 덕분인지, 아니면 투수 본인의 순수한 역량인지를 설명하는 과정의 언어입니다. FIP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며, 투수의 미래를 예측하는 이성의 기록입니다.
현대 야구에서 유능한 단장과 스카우트는 단순히 낮은 ERA만을 가진 투수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FIP와 xFIP를 통해 투수의 재현 가능한(Repeatable) 실력을 파악하고, 불운에 시달리지만 FIP가 낮은 '저평가된' 투수를 발굴하여 팀의 미래를 설계합니다.
결국, ERA와 FIP는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두 지표를 함께 이해할 때, 우리는 한 투수가 걸어온 길(ERA)과 앞으로 걸어갈 길(FIP)을 모두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진정한 야구 지능을 갖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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